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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놀기/With family

[지리산3박4일] 지리산둘레길 1코스(feat. 정자나무쉼터 버스시간표)

by 연승류 2020. 8. 30.

 

 

아빠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의 빅 팬이다. TV 채널을 돌리던 아빠의 리모컨은 언제나 개그맨 윤택이 나오는 자연인 프로그램에서 움직임을 멈춘다. 건강이 악화하거나 가족과의 관계가 좋지 않거나 그도 아니면 세상이 싫어진 남성분들이 산속에 들어가 자연 속에서 생활하는 이야기를, 아빠는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걸까. 아빠도 셋 중 한 가지 이유를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 건 아닐까. 두 번째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늘 엄한 아빠에게 툴툴거리기만 하는, 나는 못난 딸이다. 

 

지리산 둘레길...1코스 도전기

 

그런 아빠의 산 사랑을 알기에 우리 가족은 여행 도중 꼭 산을 한 번씩 찾는다. 지리산까지 왔는데 '산 덕후'인 아빠가 이 타이밍을 놓칠쏘냐. 아빠는 오후에 장맛비가 온다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잠깐 비가 개는 오전에 산길을 걷자고 제안했다. 등산이 아니라 둘레길을 걷는 것으로, 가족의 체력을 고려한 대안도 스스로 찾은 모양이었다. 

 

나는 내심 언니와 엄마의 눈치를 봤다. 나와 아빠는 비교적 체력이 좋다. 산을 빠르게 걸어도 별로 헉헉거리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숲도 좋아하지 않은가. 언니와 엄마는 다르다. 언니는 태생이 체력 저질이다. 살면서 그 태생을 바꿨다면 좋았겠지만 언니에겐 별로 바꿀 생각이 없어보였다. 엄마는 나이가 들면서 무릎이 약해진 케이스다. 산 입구에서 늘 나뭇가지를 찾아 지팡이로 삼아 걷는다. 그런 언니와 엄마이기에 그들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져야 추진할 수 있는 계획이었던 셈. 

 

 

 

언니와 엄마는 고민 끝에 22코스에 이르는 지리산 둘레길 가운데 가장 쉬운 코스를 걷자고 했다. 그러면 따라나설 수 있다고 했다. 숙소 프론트에 물어보니 초심자에겐 1코스를 추천한다고 했다. 주천면 치안센터에서 시작해 내송마을·솔정지·구룡치·회덕마을·노치마을·덕산저수지·질매제·가장마을·행정마을·양묘장·운봉읍을 거쳐 총 14.7KM를 걷는 6시간짜리 코스였다. 길이만 놓고 봤을 땐 엄마에게 꽤나 무리가 될 것 같았지만 등산도 아니고 둘레길인데 괜찮겠지 싶었다.

 

또 1코스의 중간인 정자나무 쉼터에서는 1코스의 시작점으로 되돌아가는 버스도 탈 수 있었다. 도중에 지친다면 돌아올 수도 있었던 것. 엄마는 힘들면 도중에 혼자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패기롭게 시작했으나...

 

 

그렇게 아침 일찍 밥을 먹고 길을 나섰다. 오전 9시쯤 주천면 치안센터 앞에 서 있는 남원 둘레길 시작점이라는 표지판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30분까지는 웃으며 걸었던 것 같다. 평지였고 주위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넘쳐났으며 시골 할머니가 소쿠리에 빨간 고추를 가득 담고 걸어가는 것 같은 이색덕인 풍경들이 많았으니까. 경치를 감상하며 걸을 여유라는 게 있었다. 생각보다 둘레길의 인프라도 상당히 잘 갖춰져 있었다. 길의 방향이 헷갈릴 무렵이면 지리산 둘레길을 가리키는 팻말이 하나씩 나타났다.

 

문제는 30분쯤 지난 후부터 생겨났다. 어느 순간 길이 가팔라지더니 둘레길이 아닌 '등산' 수준의 길이 한참 이어졌다. "둘레길은 동네랑 동네를 잇는 길이라던데 이렇게 격한 길이었을 줄 몰랐다"고 불평하자 아빠는 아빠가 살았던 시골 마을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릴 적 소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동네 친구들과 집에 한 마리씩 있는 소를 데리고 산에 올랐단다. 문제는 짓궂은 개구쟁이들인 이들이 소에게 먹이를 주겠다는 원초 목적은 까먹고 도중 술래잡기를 시작한 것. 그렇게 실컷 놀고 정신을 차리니 소들이 사라지고 없었단다. 알고 보니 소들은 모두 먹이를 찾아 둘레길을 걸어 내려가 이웃 마을에 도착했고 그쪽 농산물마저 뜯어먹고 있었던 것.

 

소의 ‘농산물 서리’에 화가 난 이웃마을 주민들은 이웃마을 소들을 한 곳에 묶어뒀다고 했다. 결국 아빠와 친구들은 할아버지와 어른들을 모시고 이웃 마을을 찾아 소를 돌려달라고 사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참으로 귀여운 과거사가 아닐 수 없다. 그게 불과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쯤이다. 둘레길을 걸어내려 가는 소라니. 평생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게는 체감상 조선시대에나 나올 법한 우화로 여겨지는데 말이다.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길을 걷고 있자니 별로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쉬다 가면 더 힘들다는 생각에 빠르게 치고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언니와 엄마의 속도는 경사가 급해지자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는 도중 간식을 먹거나 물을 마시고 땀을 닦으며 수차례 쉬었다.

 

 

 

1코스, 중도포기

 

점차 지쳐갈 무렵(오전 11:20), 어느 순간부터 음식점의 존재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 중턱에 떡하니 '돌다리를 건너면 파전과 막걸리가 기다리고 있다'는 글자가 쓰여 있었던 것. 너무 설레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땀 흘린 뒤 먹는 막걸리, 파전이라니. 게다가 점점 날씨는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비가 왔다. 어딘가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그렇게 '정자나무 쉼터'가 나왔다. 식당은 하나였다. 낡아보이는 가게로 들어가 테이블에 앉았다. 매우 저렴한(도토리묵무침 6000원, 파전 8000원, 컵라면 2000원 등) 음식을 주문하려던 찰나, 엄마가 숙소로 돌아가야겠다고 선언했다. 다리가 아프다고 여기서 돌아가지 않으면 민폐가 될 거라고 했다. 

 

 

 

아빠와 나는 고민했다. 출발 지점으로부터 2시간을 막 지나보낸 시점이었다. 조금 더 걷고 싶었다. 아직 지리산을 온전히 느끼기에는 부족했다. 하지만 엄마는 완강했다. 결국 엄마를 혼자 보낼 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고 함께 버스를 타고 출발 지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그러니 정자나무쉼터 가게에는 들어가자마자 나온 셈이었다. 그래도 버스 시간표는 간신히 찍었다. 회덕마을에서 하루에 운행은 총 7번. 오전 (7:10, 8:10, 11:30), 오후(2:05, 4:20, 6:05, 8:05)였다. 우리는 11:30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버스가 오질 않는 게 아닌가.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났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졌고 우리는 결국 택시를 부르기로 했다. 정자나무 쉼터 근처 도로 가장자리에 남원 콜택시(063-635-7777) 등 두 곳이 안내돼 있어 전화했더니 안내원은 정자나무 쉼터라는 곳 자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지역 기반 콜택시이기 때문에 지리산 코스 위치도 빠삭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던 것. 나중에 물어보니 콜센터는 정작 수도권에 있다고 했다. 그곳에서 전화를 받고 이곳 택시 기사분께 전달만 해주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안내원이 연결해준 택시 기사님마저도 정자나무쉼터의 위치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 위치를 대충 말했더니 전혀 감을 잡지 못하시고 이곳저곳을 헤매셨다. 결국 네이버로 현 위치를 찍어 보내드렸다.

그로부터 10분쯤 후 버스가 지나갔다. 시골버스였는데. 늦을 줄 알고 그냥 좀 더 기다릴걸. 그로부터 30분쯤 더 지났을까. 택시가 드디어 도착했다. 살짝 위안이 됐던 건 버스를 타면 30분 가면 될 길을 1시간 너머 한참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네 명은 2만원에 시작점으로 돌아가기로 택시 기사님과 합의했다.

 

굽이치는 높은 경사의 길을 넘어 시작점에 도착했고 주차돼 있던 차를 타고 숙소 근처로 되돌아왔다.  

 


지리산 둘레길 1코스

 

총 거리: 14.7km

주천면 – 내송마을(1.1km) – 구룡치(2.5km) – 회덕마을 (2.4km) – 노치마을(1.2km) – 

가장마을(2.2km) – 행정마을(2.2km) – 양묘장(1.7km) – 운봉읍(1.4km)

 

난이도:

주천 – 운봉 : 중
운봉 – 주천 : 하


전화번호:

1)남원주천센터 전북 남원시 주천면 외평2길 5 / 063-930-0800

2)남원인월센터 전북 남원시 인월면 인월2길 95 / 063-635-0850


참고: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 외평마을과 남원시 운봉읍 서천리를 잇는 14.7km의 지리산둘레길. 해발 500m의 운봉고원의 너른 들과 6개의 마을을 잇는 옛길과 제방길로 구성된다. 이 구간은 옛 운봉현과 남원부를 잇던 옛길이 지금도 잘 남아있는 구간이다. 회덕에서 남원으로 가는 길은 남원장으로, 노치에서 운봉으로 가는 길은 운봉장을 보러 다녔던 길이다. 특히 10km의 옛길 중 구룡치와 솔정지를 잇는 회덕~내송까지의 옛길(6km)은 길 폭도 넉넉하고 노면이 잘 정비되어 있으며 경사도가 완만하여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솔숲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