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은 여행을 떠나야 직성이 풀린다. 어릴 때는 언니와 내가 어려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괄량이 소녀들이 계란 한 판의 나이를 넘긴 지금에도 월간 가족여행은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직장인이 되고 나니 모두 돈을 번다는 이유로 가족용 여행 적금까지 모아가며 더 자주 놀러 다닌다.
지난 6월 말. 가족 여행용 통장에 처음 40만원이 꽂히기가 무섭게 우리 가족은 또다시 여행을 떠날 계획을 짰다. 7월에 곡성과 구례, 하동 등 지리산 주변 마을들을 돌아보자는 계획이었다. 좋은 기억이 남아 있는 구례를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족은 한껏 들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혹은 20여년 전 화엄사를 방문했다가 자동차 키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화엄사를 한 바퀴 돌고 내려오는데 아빠는 차 키가 없다며 당황해했다. 덩달아 벙찐 우리 가족은 샅샅이 흩어져 걸어온 모든 발자국들을 추적했다. 그래도 찾을 수 없어 망연자실해하며 차쪽으로 돌아왔더니 누군가 우리 차 와이퍼 앞에 키를 걸어놓은 게 아닌가.
차 키가 달려 있던 열쇠고리에는 차 번호판의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이를 본 은인이 직접 번호판에 해당하는 차를 찾아 키를 놓고 간 것이었다. 그날 아빠는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잇몸 미소를 보이며 누군지 모를 이를 향해 감사하고 또 감사해했다.
지갑 열고 찾아간 곡성 뚝방마켓...그런데
7월 11일. 우리 가족은 휴가를 떠났다. 하루 전날, 여느 때처럼 들뜬 엄마는 11일은 토요일이라 차가 막힐 수 있으니 새벽같이 출발하자고 했다. 4시30분에 일어나 5시에는 집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전날 늦게까지 업무에 시달렸던 언니와 나는 "이건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라며 투덜거렸지만 못이기는척 서둘러 잠을 청했다. 실은 엄마의 설레는 마음에 누구도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그래서 4시30분에 일어났다. 아니, 오히려 나는 늦게 일어난쪽이었다. 들뜬 나머지 셋은 이미 서로를 "빨리 준비하라"거나 "칫솔은 챙겼냐"며 기대를 투닥임 속에 감추고 있었다. 경상도 집안에서는 흔한, '설렘'의 바디랭귀지였다. 아빠 차에 몸을 싣고 뻗었다가 눈을 뜨니 벌써 공주 휴게소였다. 엄마 아빠는 든든히 아침을 챙겨 먹고 나와 언니는 주전부리를 샀다. 언니와 나는 그 지역 특산물은 먹고 지나가야 한다는 주의인데 이날도 공주 알밤 빵을 사 먹었다.
그리고 오전 11시쯤 도착한 곡성 기차당뚝방마켓. 하필이면 딱 둘째 주 토요일에 곡성을 지나치게 돼 '갈 운명'이라고 생각해 급하게 들른 그곳. 하지만 애석하게도 딱 이날부터가 하계휴가 기간이었다.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는 언니와 나는 플리마켓이라면 사죽을 못 쓴다. '필요한 게 있을 때 그 물건을 산다'는 일상 속 공식은 플리마켓 앞에서라면 처참히 무너진다. 거꾸로 내게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찾아다닌다. 특히나 예쁜 아이템을 발견했을 때 '이건 필요한 물건'이라며 스스로를 설득하는 합리화에도 능하다. 결론은, 정말 지갑을 열어놓고 그곳에 방문했단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픈 예정 시간이라던 11시가 되어도 어떤 셀러들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뚝방마켓 인스타그램(@DUKBANG_MARKET)을 검색해본 결과 하계휴가라는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9월에 재개장을 한다고 했다. 너무 아쉬웠다.
그나마 위안이 됐던 건 노란색 천막이 사진 찍기에 적합했다는 거다. 우리 가족은 내가 챙긴 셀카봉 앞에 옹기종기 모여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곡성은 한 바퀴 돌고 끝. 역시나 여행지를 검색할 땐 'OOO'보다 'OOO 쉬는 날'을 먼저 검색해야 하는 모양다.
기차당뚝방마켓
섬진강 기차마을 전통시장 인근 하천 뚝방에서 열리는 플리마켓
개장: 매년 11월 말까지 매월 둘째·넷째 주 토요일 개장(7월·8월 휴장)
운영 시간: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9~11월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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