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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놀기/Middle level

[#나홀로여행] 제주시외버스터미널 1인 갈치조림 '현옥식당'

by 연승류 2020. 5. 26.

1인 갈치조림의 위엄

 

혼자 국내를 여행할 때 가장 아쉬운 점은 '나홀로 여행객'을 배려해 1인 메뉴를 갖춰둔 식당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맛없는 메뉴라면 불평하고 말 텐데, 하필이면 지역 대표 메뉴가 2인 이상의 정식 코스인 경우가 많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해 짐을 풀었는데, 왠지 모르게 제주 대표 명물, 갈치조림이 먹고싶어진 거다. 검은 냄비에 자작하게 담긴 빨간 양념, 그 위로 졸여진 갈치를 생각하자니 나도 모르게 침샘이 자극됐다.

 

그래서 열심히 찾아봤다. 혼자 먹을 수 있는 갈치정식을 파는 곳 말이다. 다행히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현옥식당'이 있었다. 

 

"지금 식사 하시나요?"

 

오후 3시쯤, 곧 부숴질 것 같은 낡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종업원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네 분이 식사를 하고 계셨다. 그들이 도란도란 나누고 있는 대화를 끊고싶지 않아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을 때, 한 분이 시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오라고 했다. 

 

외국인으로 보이는 종업원이 무엇을 시킬 것이냐 물어본다. 가게의 한쪽 벽면에는 여러가지 메뉴들과 가격들이 나열돼 있었지만, 나는 단번에 1만원이라고 적힌 갈치조림을 가리켰다. 2인 이상 정식을 고집하는 대부분의 갈치조림 가격이 3~4만원대임을 감안할 때, 꽤 저렴한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10분쯤 기다리자, 몇 가지 밑반찬과 함께 혼자만을 위한 갈치조림 한 상이 차려졌다.

 

1인분(1만원)인 만큼 양이 많지는 않았다. 큰 크기 갈치 2 덩어리와 1개의 작은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유튜브에서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이 올린 '생선 가시 잘 바르는 법'에 관한 영상을 정주행하고 간 까닭일까, 상이 차려지자마자 부지런히 가시를 발랐다.

 

그리고 한 입 베어무는데, 매콤달콤한 양념이 금세 입 안 가득 퍼진다. 첫 입부터 밥 한 공기를 뚝딱 하겠구나 싶은 예감이 든다. 역시나 그대로였다. 갈치는 진작에 먹어치운 지 오래지만, 남은 양념들을 싹싹 긁어 밥에 넣고, 밑반찬으로 나온 무생채를 쾌척해 한입 크게 떠먹는다. 그리고는 매콤함에 얼른 찬 물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혼자 왔는데도, 이런 호사가 또 없다. 제주에 오게 되거든, 혼자든 여럿이든 다시 찾을 만한 맛집이다.